요셉은 17세에 애굽으로 끌려와 종이 되고 또 죄수 신세로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질문하며 성실하게 하나님과 함께 살아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시며 하나님의 시간에 반드시 하나님의 꿈을 이루신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들이 요셉을 좋게 여겼다. 왕과 신하들이 요셉의 말에 감동을 받았고 신뢰하게 되었다.

바로는 신하들에게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방나라 왕이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요셉에게 알려주는 특별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이 드러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땅에 떨어지지 않고 안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어야 한다.

드디어 요셉이 30세가 되었을 때 히브리 죄수가 애굽의 총리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의식주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는 요셉을 파격적으로 애굽의 총리로 임명한다. 요셉은 죄수에서 하루 아침에 총리가 된 것이다.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 인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하나님이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다.

하나님은 요셉을 13년 동안 준비시키셨고, 바로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꿈을 이루시고 있는 것이다.

바로는 요셉에게 인장 반지를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며, 금 사슬을 목에 걸고 버금수레를 타게 한다. 바로의 모든 권한을 요셉에게 준 것이다. 하나님이 요셉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럽게 회복시켜 주신다.

요셉은 총리가 되자마자 명령만 해도 되지만 애굽 온 땅을 순찰한다. 요셉의 일생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책임을 다하는 태도와 변함없는 성실함이다. 요셉은 이제 힘과 권력을 가지고 보디발의 아내를 혼내 줄 수도 있지만 복수를 하지 않는다. 군림하여 교만하거나 향략과 쾌락에 빠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무엇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

바로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로 바꾸고 아스낫을 아내로 삼게 한다. 하지만 요셉은 우상숭배나 신앙이 변질되지 않았으며, 믿음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두 아들을 주셨는데 첫째는, 므낫세이고 둘째는, 에브라임이다.
므낫세는 하나님께서 살아온 과거의 고난과 억울함, 아쉬움과 상처를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고백의 이름이다.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가 지워지지 않아 자유와 평강없이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다. 하나님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상처와 괴로움을 치유하시고 잊게 하시는 분이시다.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수고하고 고통 받는 땅에서 번성하게 하고 창성케 하신다는 뜻이다.
요셉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애굽의 총리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요셉은 칠 년의 풍년을 잘 준비하여 흉년이 왔을 때 넉넉히 감당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풍년이 올수도 있고 흉년이 올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해야 한다.

애굽과 인근 나라까지 흉년이 왔을 때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할 때에 요셉에게 가라고 한다. 요셉이 곡식을 저장한 창고를 열고 백성들에게 팔고 나누어 준다.

우리가 혹 어렵고 힘든 흉년의 시기에 있다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부르짖어 구한다면 우리 주님이 응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요셉 때문에 애굽과 인근 나라까지도 구원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한 사람을 통해 도시와 민족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3분 요약설교

https://youtu.be/dcKEdvnLkg0

설교와 찬양 전체 링크

https://youtu.be/MPPIAYPeb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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