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에 위치한 백운성결교회 담임 류정호 목사. 교회를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 총회장과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등 연합기관의 대표로 성공적인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목회자 아버지의 희생과 헌신의 자세를 이어받아 어렵고 힘든 목회 환경에도 묵묵히 감당해내고 어디를 가든지 화목한 목회를 이뤄가는 류정호 목사의 목회와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백운성결교회 류정호 목사
백운성결교회 류정호 목사

| 삶의 시선

고1 때 목회자로 서원했지만 아버지 목사님의 힘든 목회 모습 보고 장로가 되기로
아버지의 목회 모습 보며 '목사는 곧 고난이다' 어릴 때부터 삶으로 터득
"사랑하는 정호야, 천부께서 너의 기업이 되신다" 아버지의 유언이 목회의 유산돼

Q.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나?

나는 목회자의 자녀로 2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데 일주일 금식을 하면서 성령체험과 신유체험을 했다. 이후에 확신을 갖고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했다. 

그런데 사춘기였던 나는 아버지가 농어촌에서 힘들게 목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목표가 흔들렸다. 성도님들이 목사님에게 힘들고 어렵고 속상한 이야기들을 하고 목사님이 모두 힘들게 감당하시는 걸 보면서 ‘나는 돈을 벌어서 목사님을 후원하는 좋은 장로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고 의사인 형님처럼 의대를 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런데 시험에 떨어지고 재수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기간에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하나님께서 내가 눈물 흘리면서 금식기도하면서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사실을 다시 생각나게 하셨다. 의대로 가기로 한 것은 형에게 뒤지지 않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좋은 장로가 되고 싶다는 인간적인 욕망이었다. 목사는 가난하고 하고 싶은 말 못하고 늘 들어야 하니까 나는 베풀면서 살고 싶었다. 목회자의 고뇌와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장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콜링을 다시 받고 마음을 돌이켜 첫 마음으로 신학교로 진학했다. 

2020년 송구영신예배 시 장로들과 새해인사를 하는 류정호 목사
2020년 송구영신예배 시 장로들과 새해인사를 하는 류정호 목사

Q. 목회자로서의 삶을 사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할 때쯤 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목회 시작할 때 나는 특별히 도움받을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농촌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도 나를 도와주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개척할 때 물질적인 재정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께서 섬에서도 목회를 하시고 농촌에서도 목회를 하셔서 ‘목사는 곧 고난이다’라는 것을 아버지의 삶을 늘 옆에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 목사는 가난한 거고 고생하는 것, 두들겨 패면 맞는 것이라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몸으로 터득했다. 

류정호 목사가 목양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정호 목사가 목양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Q. 목회를 위한 좋은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장을 써주셨는데 내용에 “사랑하는 정호야, 천부께서 너의 기업이 되신다”라고 적혀있었다. 아버지의 예언 같은 축복의 말씀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천부가 나의 기업이 되시고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시라는 고백을 하게 되고 간증을 하게 된다. 내가 목회자로 헌신하고서도 중간에 신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도 목사가 고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대로 천부께서 나의 기업이 되신 것을 붙들고 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참 많이 경험했다.

목양교회 사역 당시 류정호 목사와 윤길순 사모
목양교회 사역 당시 류정호 목사와 윤길순 사모

| 사역의 시선

부모님의 기도와 원래 목사는 고생이라는 생각이 '금수저의 능력'
두 번의 교회 개척 후 백운성결교회 부임, 6년 만에 빚 갚고 사역에 활력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으로 섬겨

Q. 지금까지 목회를 잘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신학교 다닐 당시 우리 성결교단은 단독 목회 2년을 해야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신학교를 마치면 대부분 개척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고생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목사는 본래 고생이다’라고 생각했다. 목사는 원래 고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능력이다. 나는 그것이 ‘금수저의 능력이다’라고 말한다.

목회하면서 어려움이 왜 없을까. 목회자 누구나 경험하는 그런 애로와 고난과 고충들이 있지만 그때마다 ‘목사는 본래 그 길이니까’, ‘원래 이 길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나는 그렇지?’ ‘왜 이러지?’ ‘왜 나는 이렇게 힘들고 고생해야 하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는 원래 그런 거야’라는 받아들이는 마음이 내게 능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금수저의 능력은 부모님의 기도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연히 첫째이고 그다음 은혜는 부모님의 기도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금수저의 능력은 고생과 기도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3년차 총회에서 류정호 총회장이 취임한 임원들과 손을들어 인사하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3년차 총회에서 류정호 총회장이 취임한 임원들과 손을들어 인사하고 있다.

Q. 어려운 개척을 두 번이나 했는데,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첫 번째 개척은 단독 목회를 해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어서 개척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 당시에 재정이 없었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2층 건물에서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5만 원에 빌려서 첫 단독 목회를 시작했다. 

예배당 한편에 있는 창고를 사택으로 사용했다. 블록으로만 시공된 벽이라서 겨울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스티로폼 얇은 것을 붙이고 그 위에 신문지를 붙이고 도배하고 지냈다. 밤마다 천정에선 쥐들이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목회에 대해서 자신만만해서 “교회가 왜 부흥이 안 되냐, 부흥이 안되는 게 이상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인간적인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서 아주 많이 깨졌다. “아, 이게 인간의 힘과 능력,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구나.” 그때 하나님이 나를 많이 연단시키셨다. 양식이 떨어질 때도 있었는데 어느 날은 이웃 교회의 한 분이 교회에 쌀을 조금 갖다 놓고 가셨다. 지금도 누가 갖다주셨는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것처럼 하나님이 그때 굶어 죽지 않도록 해주셨다.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땐 아내가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모유도 거의 나오지 않고 분유를 구해야 할 땐 참 마음이 어려웠다. 나는 사명이지만 아내는 나를 따라 참 많은 고생을 했다. 그 가운데 함께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경험했다. 

어려운 과정들을 잘 이겨나가면서 교회가 50여 명까지 성장했다. 그런데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사역에 탈진이 왔다. 그즈음 관찰장 목사님께서 서울에 있는 교회로 부임하시면서 나를 부목사로 오기를 요청하셨다. 옮겨서 4년간 조금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내 마음속에 “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디든지 하나님이 첫 번째 나를 부르는 곳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사인으로 믿고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아는 목사님께서 개척을 권유하셨다. 어느 곳이든 가겠다고 기도했지만 처음 들었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기도했기 때문에 실행해 옮겼다. 그때가 1988년이었는데, 1,5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당시 상계동이 개발되는 중이어서 갔는데, 내가 가진 재정으로는 세를 얻는 게 불가능했다. 시골로 가는 것은 아니라 판단해서 고심 끝에 대전으로 오게 됐다. 2층 건물에 세를 얻어서 1989년 1월 14일 창립 예배를 드렸다. 창립멤버는 나와 아내, 두 아들 네 명이 다였다. 매일 집집마다 방문해서 축호전도하고 노방전도를 했다. 근처에 충남대학교가 있어서 기숙사에 가서 전도했다. 10년 후 교회 부지를 사고 건축을 하게 됐다. 지금의 목양교회인데, 과정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다. 1,500만 원으로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서 100배 이상의 복을 주셨다.

2019년 6월 16일 총회장 취임 감사예배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9년 6월 16일 총회장 취임 감사예배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Q. 개척 목회를 잘 하고 있었는데 백운성결교회는 어떻게 오시게 됐나?

2000년도에 백운성결교회 신형철 목사님께서 소천하셔서 당시 지방 회장을 하고 있던 내가 치리목사로 오게 됐다. 그런데 후임 담임목사 청빙을 진행했는데 잘 안됐다. 교회에서 나를 담임으로 와달라고 하셨다. 가슴이 철렁했다. 치리목사로 있으면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IMF가 끝나기 전이었고 건축 중인 백운성결교회의 빚이 30억이나 되는 상황에서 개척교회를 잘 하고 있던 내가 올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 말씀에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나아갔던 것처럼 나에게 자꾸 떠나라는 음성을 주셨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그냥 떠나라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당회에서 만장일치로 청빙을 결정했다고 연락이 왔다. 이젠 뒤돌아설 수 없었다.

당시 시무하고 있던 목양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참 어려웠다.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자고 붙들었던 성도들에겐 내가 떠난다는 말은 배신같이 들릴 것 같았다. 성도들이 나를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붙들었다. 인간적인 마음의 갈등이 컸다. 하지만 온 정성과 물질을 다 바쳐 사역한 교회에서 모든 것을 놓고 백운성결교회로 오게 됐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3년차 총회에서 류정호 목사가 단상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3년차 총회에서 류정호 목사가 단상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Q.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기준과 방향은?

나는 목회자의 희생과 성실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목회에 어떤 방향이 있지만 내가 좀 더디 가고 속도를 조금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화목하고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다. 

우리 교회에서 21년 시무하는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충돌 없이 올 수 있었던 것도 사도행전에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느니라’고 하는 것처럼 ‘평안하면 그 평화를 위해서는 화목해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왔다. 

21년 전 백운성결교회에 왔을 때 우리 교회에는 부유한 성도가 없었다. 그런데 빚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목양교회에서 퇴직금 받은 것을 모두 헌금하고 1년간 사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외부 활동을 하지 않기로 하고 오로지 교회를 위한 일만 했다. 

놀랍게도 큰 헌금하시는 분이 거의 없는 상황에도 6년 만에 교회의 빚을 모두 다 갚았다. 그리고 교회가 더 활력 있게 나갔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다.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와 기념사진(왼쪽으로 부터 문수석 목사(예장합신 총회장), 류정호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김태영 목사(예장통합 총회장))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와 기념사진(왼쪽으로 부터 문수석 목사(예장합신 총회장), 류정호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김태영 목사(예장통합 총회장))

Q.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과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등 연합기관의 대표로 사역하시면서 느낀 소감은?

나는 내가 총회장을 할 만한 사람이라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주변 목회자들과 장로님들이 추천을 하고 준비를 해서 하게 됐다. 그동안 성결교단 안에서 여러 역할을 맡아오면서 갈등이나 관계가 깨진 적 없이 두루 좋은 관계로 일을 해왔다. 신학교 동기와 후보에 출마하게 됐는데 내가 당선됐다. 교단 총회장으로 나는 화목하게 총회를 이끌고 싶었다. 좋은 말이 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총회에 100여 명 되는 직원들을 보면서 사기를 높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격려하고 처우도 개선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총회 건물이 40여 년 전 세워질 땐 강남 최고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재개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시비가 없이 진행하기 위해 3년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교단 총회장을 1년간 하면서 시끄러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소 고발  사건도 한 건도 없이 평안하게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 초 갑자기 코로나 사태가 났을 때 기도하는 중에 교단 소속 작은 교회를 위해 여유가 있는 교회가 상회비 십일조 운동을 했다. 교회들이 감사하게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줘서 단번에 10억이 넘는 금액이 모금돼 형제 교회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었다. 그것이 제일 보람 있는 일이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는 교단 총회장이 되면서 당연직으로 취임하게 됐다. 예장통합 김태영 총회장과 예장합신 문수석 총회장과 나 세 명이 공동대표회장을 맡았다. 교단의 입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있지만 세 사람이 마음을 잘 모아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역시 거기 가서도 내 마음에 느낀 것은 우리가 조금 내려놓고 우리 교회와 우리 교단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서로 조금만 배려하면 얼마든지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균열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쓰고 싶은 힘을 조금만 줄여서 함께 한다면 서로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을 늘 되새겼다. 나 혼자 하면 빨리해버릴 수도 있고 함께 하려면 답답하고 속 터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연합을 위해서는 우리가 조금 비우고 조금 천천히 가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유익함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 생각의 시선

남은 목회 기간 교우들과 추억 남기고 은퇴하고 싶어
급한 성격 있지만 부모님의 온화한 성품 본받아 목회
"아버지 같은 목사가 되고 싶어요" 큰아들 편지에 감동의 눈물

류정호 목사는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결단하려고 노력한다.
류정호 목사는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결단하려고 노력한다.

Q. 요즘 많이 생각하는 주제는?

목회가 이제 5~6년 정도 남았다. 그래서 요즘 목회 마무리를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후임에게 바통을 잘 전달해서 교회가 계속 건강하게 성장하고 지역사회와 한국 교회에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라고 있다. 남은 기간 동안 교우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사실 우리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있다. 어느 교회는 성지 순례도 가고 뭐도 하고 그랬는데 나는 그런 걸 못 해봤다. 성도들이 목사님이 무슨 설교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잊어버려도 목사님과 경험한 추억은 오래 남지 않는가. 성도들과 추억거리를 만들고 싶다. 

최근 2~3년 동안 총회와 교계 일로 성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거기다 코로나로 심방을 못한 지가 오래됐다. 그래서 지난봄에는 문고리 심방을 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집 앞에서 잠깐 기도하고 전달하고 왔다. 

여름 복날에는 삼계탕 두 마리를 노년 성도들 가정에 전해드렸다. 심방을 못하는 대신에 이렇게 했더니 성도들이 정이 느껴진다고, 목사님 사랑이 느껴진다고 했다. 성도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친밀함을 느끼기 위해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넉넉하고 포용하는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추억을 남기고 떠났으면 좋겠다. 

사단법인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류정호 목사
사단법인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류정호 목사

Q. 나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분은?

나에게 영향을 끼친 몇 분이 있다. 한 분은 바나바훈련원 이강천 목사님이시다.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와 교단 총회본부에 선교국장을 하시고, 목회도 하셨는데 그분의 영성과 삶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목사님처럼 저렇게 목회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욕심이 없고 가르치시는 것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성자 같은 모습이다. 

또 한 분은 인격과 지성을 갖고 계신 이상직 교수님이다.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를 하시다가 호서대학교 교수로 계셨다. 교수님을 통해서 배운 지식보다 그분의 인품과 인격, 배려를 많이 배웠다. 두 분을 통해서 신학에 대한 영향력과 목회, 성품, 인격 이런 부분에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분은 당연히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다. 그분들의 성품은 부딪히지 않고 늘 본인이 희생하고 참으셨다. 어릴 때 나는 그런 모습이 속상했다. 그런데 이제 지나고 나니까 자식을 키우는 것도 오래 참으면서 하는 것이고, 우리가 가진 목표도 결국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참는 것, 그것이 승리하는 거다.

나의 원래 성격은 급하고 다혈질적인 면도 있다. 그런데 목회할 때는 그런 기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부모님의 온화한 성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좋은 부모님의 성품을 내가 본받았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참 감사하다.  

2020년 2월 7일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교민들과 아산시에 한국교회총연합 류정호 목사가 방역용품과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2020년 2월 7일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교민들과 아산시에 한국교회총연합 류정호 목사가 방역용품과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Q. 가정에서의 아버지와 남편으로서는 어떤가?

무남독녀인 아내는 대학 졸업한 이듬해 스물네 살에 나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아내는 나에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데려다가 당신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고 살았다”라고 말한다. 나서지 않고 과묵하게 늘 참고 따라주면서 잘 인내해 준 아내에게 늘 고맙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목사님은 사모님 때문에 목회하는 줄 알아요”, “나는 사모님이 더 좋아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그게 듣기 싫지 않고 감사할 뿐이다. 

두 아들은 모두 목사가 됐다. 큰 아들이 신학교를 가겠다고 할 때 내 가슴이 뭉클했다. 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아버지 같은 목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보고 울었다. 감동이었다. 내가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아들한테 인정받는다는 것이 기쁘고 좋았다. 둘째 아들도 부목사로 목회를 잘하고 있다. 좋은 부자관계를 갖고 있어서 참 감사하다. 

(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 류정호 목사가 한국교회100주년 기념관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 상임회장회의를 인도하고 있다.
(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 류정호 목사가 한국교회100주년 기념관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 상임회장회의를 인도하고 있다.

Q.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달란트는?

나는 특별히 내세우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동안 교단에서 여러 부서 활동을 하면서 내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갈등 없이 무난하게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날을 세우거나 부딪히지 않고 원만하게 처리하고 관계를 깨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참 좋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을 주셔서 특별히 적을 만들지 않고 원만하게 살아오게 하신 것이 내가 가진 달란트인 것 같다. 

| 세상의 시선

세상과 교회는 긴장관계, 신실한 크리스천 리더 많이 키워야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될 때 사회가 안정되고 평안할 것
미련하고 바보처럼 보여도 단순하게 주님만 바라보고 살길

(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 류정호 목사가 국가조찬기도회 간담회 및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 류정호 목사가 국가조찬기도회 간담회 및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는 언제나 긴장 관계다. 세상의 문화는 결국엔 탐욕과 탐심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지구 온난화도 무분별한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 때문에 결국 우리가 받는 지금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코가 깨져봐야 아, 아프구나라고 느끼지 그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교총 대표로 정치인과 크리스천 관료를 만나서 이야기해봤을 때 자신의 생각이 있어도 소신 있게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봤다. 코로나 시대의 근원지가 교회가 아니라고 하지만 언론에게 이 내용을 밝혀달라고 하니 해주지 않더라. 

우리가 사는 삶은 영적 전투다. 교회 안에 신실한 크리스천 리더들을 많이 키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서 그 소리를 좀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신 있는 에스더 같은 크리스천 리더들이 많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 류정호 목사가 제52회 국가조찬기도회 간담회 및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류정호 목사)
(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 류정호 목사가 제52회 국가조찬기도회 간담회 및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류정호 목사)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요즘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소유한 사람은 좋겠지만 앞으로 집을 구입해야 할 사람들은 더 어려워졌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이 모두 더불어 함께 사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교회도 사회에 더 많이 나누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마지막 희망과 보루는 교회밖에 없다. 교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이전에는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했지만 한국 교회가 하는 많은 선한 일들을 드러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을 교회가 하고서도 때론 교회가 욕을 먹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우리는 적대감을 가지지 말고 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교회가 더불어 함께 갈 때 사회가 안정되고 평안하게 될 것이다. 교회가 그런 영향력을 점점 더 넓혀가길 기대한다.

영적 전투의 세상에서 소신 있는 에스더 같은 크리스천 리더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하는 류정호 목사.
영적 전투의 세상에서 소신 있는 에스더 같은 크리스천 리더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하는 류정호 목사.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창세기에 나온 선악과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것처럼, 지금 시대에도 우리의 눈을 돌아가게 하는 화려한 것들이 많다. 개구리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을 못 깨닫고 죽는 것처럼 처음엔 아니야 아니야 하다가 물들어가는 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인생 복잡하게 머리 굴려서 약삭빠르게 살지 말고 조금 미련하고 바보스럽게 보여도 단순하게 주님만 바라보고 단순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주님만 알아주시면 되는 거 아닌가. 예수님만 쳐다보고 가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신랑 되신 주님만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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