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수요일 오후에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요즈음은 비대면 수업이라 학생들은 영상으로 참석하고, 매일 출근하는 교수들과 직원들, 그리고 갈데가 없어서 기숙사에 지내는 선교사 부부가 예배실인 넓은 강당에서 대면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요예배 후에 현장에서 예배드린 선교사님 한 분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요즘 학교에 무슨 일이 있으세요” 학교에 무슨 힘든 상황이 있어서 설교의 톤이 높아진 것은 아니냐는 의도가 담긴 질문입니다. “특별한 일은 없는데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또 다른 목사님을 만났는데 “요즈음 설교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라고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아뇨, 과거 어느 때보다 에스라 호는 순항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하면서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본문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비대면으로 2학기를 시작하면서 이사야 40장을 본문으로 몇 차례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도 이사야 40장부터 매일성경 본문이 시작했는데 이전에 처음 40장을 만난 것도 묵상본문 때문이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분이라면 멋있는 풍경을 두고 그냥 지나갈 수 없을 것이고 낚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고기가 잘 무는 포인트를 지나칠 수 없듯이 저는 이사야 40장을 그냥 묵상 본문만으로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40장으로 다섯 편의 연속 설교를 하게 되었고 그 때 처음 설교자 이사야를 만난 셈입니다. 그리고 여러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오면 수 없이 반복해서 그 말씀을 전하다가, 이번 가을에는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수요예배에서 또 다시 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은 아직도 제게 은혜가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또 하나의 이유가 기억났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내년 도서출판 두란노에서 누가복음 강해설교 전집 출판을 위해서 설교원고를 손질한다고 하루에 다섯 편 정도를 매일 읽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역으로 목회를 하고 있을 때도, 어느 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하고 나면 주일 설교가 더 힘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며칠동안 연속해서 몇 차례 말씀을 전하다보면, 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이 그 말씀을 듣습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청중보다 더 잘 듣기 때문에 그 말씀이 주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영향이 다가온 주일설교까지 미쳤던 것을 떠올려보니, 요즈음 누가복음 첫 설교집, 1장에서 3장까지, 39편의 설교를 집중적으로 읽다보니, 말씀의 은혜를 맛본 결과가 에스라 수요예배에 그 영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은혜를 받는 방편으로 무엇보다 먼저 말씀과 성례, 그리고 기도를 손꼽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서 더 이상 말씀을 듣거나 읽고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고 감동을 하는 세대라, 출판을 위한 설교문을 손질하다가도, 때론 회의감 내지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선하신 주님의 은혜로 책이 잘 출판되면 성도들의 마음이 움직여져서 설교집을 읽도록 하시고, 읽으면서 저처럼 은혜를 받게 되길 바랍니다. 이미 죠이북스에서 나온 <읽는 설교 야고보서>와 <읽는 설교 요한계시록>에 이어서 누가복음 전체를 다섯 권으로 나올 때에 성도들의 손에 읽히는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선 각권 제목으로 1 <구원사의 서곡> 2 <사역의 시작> 3 <갈릴리사역> 4 <예루살렘으로> 5 <구원사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은 무엇을 먹느냐와 관련이 있듯이, 우리의 영혼은 무엇을 듣는가 혹은 읽는가와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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