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돌아오는 한가위이지만 올해는 처음 맞는 한가위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은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배우자 없이 황망하게 첫 명절을 맞이하는 분들입니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분들이 제 주변에도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에 울산으로 내려가면서 대전에 들리려고 연락을 했더니 “사랑으로 하는 일은 피곤하지도 어렵지도 바쁘지도 않을 듯 하옵니다”고 답했던 아내 분을 얼마 전에 보내고 첫 명절을 맞이한 분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배우자와의 사별이라고 말하는데, 홀로 남은 배우자에게는 명절이 다가오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님 가운데 한 분을 보낸 자녀들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낸 분은 그래도 나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던 어머니를 보내고 맞이하는 한가위는, 오곡백과가 아무리 풍성한 세상이라도, 온 우주가 공허한 느낌조차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길이 막힌들 망서리지 않고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가던 기쁨은 이제 다시는 반복될 수 없을 것입니다. 홀로 계신 아버님을 위해서 명절 상을 마련해야 하지만 그런 설정 자체도 낯설고 고통스런 그림입니다. 하긴 아버지 입장에서도 자녀들의 섬김이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외롭긴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자신의 삶이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사람에게 달려있지는 않습니다.

혹시 명절을 앞두고 떠난 분의 묘소를 방문하는 자녀들 가운데, 떠나가신 어머님을 떠올리면서 그 분의 신앙의 걸음을 회상할 수 있다면 더 없이 복될 것입니다. 그 걸어오신 걸음 걸음에 새겨진 신앙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새기는 기회가 된다면 하늘 아버지 품에 안긴 분에게 그 어떤 선물보다 고귀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왜 그처럼 매일매일 하늘 아빠의 음성을 듣고 싶어하고 그 음성을 들으면 순종해서 살아내려고 몸부림친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만 한다면 한가위 그 푸른 하늘이 더욱 아름답게 온누리를 감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서로 상관없는 개체로 짓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서로 관련을 갖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부모자녀로서 맺어지고 형제자매로도 관련됩니다. 바다 한 가운데 섬처럼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가 있고 조부모가 있고 삼촌과 사촌, 오촌, 육촌 등으로, 이런 혈연관계들로 맺어진 친척과 또 혼인을 통해서 맺어진 인척관계들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간이 고향을 방문하는 명절입니다. 각자 연고지로 돌아가 친인척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혈연의 유대 속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살아있을 때는 만남을 통해서, 세상을 떠난 후에는 기억을 되살림으로 가꾸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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