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부부 이야기’ 김용숙 작가
홍역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 얻어
부르시는 그날까지 스스로 예배드리길 기도해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변화의 시기를 겪곤 한다. 그 시기가 하나님을 통해 변화된다는 것은 큰 기적이다. 후천적 요인으로 평생 목발을 짚으며 살아 온 김용숙 작가는 2021년 12월,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목발 부부 이야기’를 세상에 출간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삶이 변화된 김용숙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용숙 작가
김용숙 작가

|삶의 시선

“용숙아, 나는 하나님 때문에 이 시기를 견딜 수 있었어.”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발 들이기 시작해

Q. 하나님을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사춘기에 방황하며 예수님을 만났다. 중학생 시절, 다리에 장애가 있는 나는 친구들이 내게 전하는 모든 언어가 부정적으로 들렸고, 내 머릿속에는 ‘나를 모욕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로 인해 갈등이 잦았고,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입학했고, 키가 작은 나는 앞줄에 앉았다. 하교할 때, 내 뒷자리에 앉는 친구가 내게 “교회에 다녀보지 않을래?”라고 권했지만 나는 친구의 권유를 거절했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이상하게도 친구의 권유가 머릿속에 맴돌았고, 다음날 나도 모르게 그 친구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음을 열게 된 그 친구가 내게 힘들었던 가정사를 알려주며, “용숙아. 나는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하나님 때문에 이 시기를 잘 견딜 수 있었어.”라고 이야기했다. 덧붙이며 “능력의 하나님께서 네 다리를 고쳐주실지 모르니 나와 함께 교회를 다녀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했다. 친구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은 ‘하나님께서 다리를 고쳐주실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불편했지만, 체육 수업 시간에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체육 수업을 들을 때나 운동장 조회 시간을 가질 때 항상 교실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고쳐주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뛰어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의 변화가 생긴 나는 친구 따라 교회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께서 앉은뱅이가 사슴처럼 뛰고, 벙어리가 노래하는 이야기가 담긴 ‘이사야 35장 5~6절’의 내용으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 모습이 유창하고 광이 나 보였다. 첫 예배를 통해 은혜받고 난 후, 토요일마다 진행되던 학생 예배를 드리러 다녔다. 매주 토요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큰 행복을 느꼈다. 아무것도 몰랐던 학창 시절의 나지만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Q.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사춘기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 학창 시절 당시 1,500여 명의 학생 중 나만 유일하게 목발을 짚으며 생활했다. 당시, 내가 걷는 모습이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칠 때마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내 모습이 비치는 장소는 최대한 피해다녔다. 그때는 '세상을 등져야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고생하며 나 자신을 좀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건너는 기간이었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김용숙 작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김용숙 작가

Q.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았던 순간이다. 아들이 손발을 움직이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첫째 아들이 태어난 후 11개월부터 걸어 다니기 시작했는데, 몸은 피곤해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Q. 목발을 짚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유년 시절엔 ‘예방 접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홍역'이라는 전염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우리 동네도 죽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자녀가 세상을 떠나면 밤에 천으로 돌돌 말아서 야산에 묻었다. 남몰래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시절이었다. 나 또한 이 시절, 오빠로 인해 홍역을 앓게 되었다. 고열로 끙끙 앓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쳤고, 그로 인해 소아마비가 발병했다. 그 후유증으로 인해 후천적 장애를 얻었고, 목발을 짚게 되었다.

Q. 울산으로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충북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를 얻었다. 부모님은 일흔이 넘으셨고, 점점 혼기가 차오르니 결혼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의 닦달로 인해 여러 사람과 선을 봤지만,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햇빛이 비치는 봄날, 고요한 시골 마을의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 세 분(성부, 성자, 성령)이 내게 사르르 다가오셨다. 그분들이 내게 공손하게 인사하더니, “남동쪽으로 시집가게 될 거예요.”라고 말씀하시곤 스르르 사라지셨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먼 훗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충북에서 바라보면 울산이 남동쪽이고, 지금 울산에서 거주 중이지 않은가. 하나님은 나의 꿈을 통해 계획을 알려주셨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더욱더 열심히 신앙 생활하게 되었다.

Q. 삶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일이 있다면?

귀금속 사업장을 운영했던 김용숙 작가
귀금속 사업장을 운영했던 김용숙 작가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키우며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사업장을 운영하던 한때는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다. 영업을 마친 후, 친구들과 저녁에 모여 오랜 시간 동안 화투를 쳤다. 하루는 남편이 나를 새벽기도회에 데리고 갔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목사님은 설교를 통해 ‘탕자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깨닫지 못한 채, ‘남편이 목사님과 이야기를 한 후, 이 설교를 전하시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한날은 새벽까지 화투 놀이를 하고 집에 돌아와 셔터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한 채 잠들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보니 셔터가 열려있어 어두워야 할 집안이 환했다. 나와 가족들이 잠든 사이, 도둑이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을 겪은 후 목사님이 탕자 이야기를 전하신 것도, 도둑이 귀금속을 훔쳐 간 일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 이후로 나는 ‘화투 놀이’라는 도박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기독 문인회 회원들
기독 문인회 회원들

|사역의 시선

나의 삶을 담은 ‘목발 부부 이야기’
첫 작품 통해 많은 사람이 위로받길 바라

Q.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글짓기 부’가 있었다. 그 시절, 교내 백일장 대회에 나가 상을 종종 받곤 했다. 물론, 결혼한 후에는 어린 시절의 일은 다 잊고 살림하기 바빴다. 남편 또한 나처럼 몸이 조금 불편하다. ‘부모가 몸이 불편하지만, 자식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야겠다.’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양육했다. 귀금속 사업을 28년 동안 하며 바쁜 시기를 보냈다. 사스가 유행하던 시기, 주변의 두 사업장에 도둑이 들어 귀금속을 훔쳐 갔다. 범인은 잡았지만, 물건을 찾지는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사업장을 접었고, 자연스럽게 문인회에 발을 들였다. 그곳에서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며 ‘목발 부부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기독 문인회에서 성시 낭독하는 김용숙 작가
기독 문인회에서 성시 낭독하는 김용숙 작가

Q. 첫 수필을 출간하셨는데, 책 제목을 목발 부부 이야기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남편도, 나도 장애를 앓고 있지만 열심히 살았다.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살고 있고, 또 자녀들도 열심히 키워 나름 괜찮게 살아가고 있다. 금은방을 접은 후, 남편이 택시 기사가 되었다. 밤낮으로 승객을 태우며 성실히 일하는 남편이 만취자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다. 그 사건을 겪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더라도, 정신 장애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감사했다. 또, 남편을 만나 소통하며 잘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에 ‘목발 부부 이야기’라고 제목을 정하게 되었다.

Q. ‘목발 부부 이야기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김용숙 작가 수필집
김용숙 작가 수필집

나는 2014년에 등단한 후, 작가가 되었다. 그때부터 하나하나 집필해서 올해, ‘목발 부부 이야기’라는 첫 작품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나의 삶이 담겨있다. 내가 겪어온 모든 일을 생동감 있게 적었다. 세상으로 나가는 구름판 역할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써 내려갔다. ‘목발 부부 이야기’를 통해 장애인은 물론, 소외계층이나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은 분들이 위로받길 소망한다.

|생각의 시선

“엄마, 몸은 불편하더라도 소나무처럼 건강하길 바라요.”
물질 만능시대를 조심해야 할 때

Q. 가정에서의 작가님은 어떤 모습인지?

김용숙 작가 부부
김용숙 작가 부부

남편에게 사랑스러운 부인은 아니지만 믿음의 동역자일 것이다. 남편이 믿음의 사람이라 신앙적인 부분에서 대화가 잘 통한다. 함께 나이가 들어가니 남편이 내 마음을 잘 헤아리고, 이해해준다. 그 모습에 나 또한 남편을 더욱더 생각하고, 의지하게 된다.

김용숙 작가 가족
김용숙 작가 가족

그리고 두 아들에게는 좋은 엄마이지 않을까. 아들들은 내가 운동할 때마다 동행한다. 운동하며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아들이 내게 “엄마, 몸이 불편하더라도 마음만큼은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소나무처럼 늘 건강하길 바라요.”라고 말해주었다. 자녀가 내게 진심을 전할 때 눈물을 쏟았다.

Q.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요즘 전도서 7장 14절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어쩌면 지금이 그 시점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치 ‘물질 만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조심하라.”라고 경고하시는 것만 같다.

Q. 힘들고 지칠 때, 특별히 힘을 얻는 찬양이 있다면 무엇인가?

찬송가 305장인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사랑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얼마나 은혜로운 가사인가. 하나님은 ‘나’라는 사람을 큰 죄악에서 건져주셨고, 살려주셨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나 스스로 예배당에 찾아가 건강하게 예배드릴 수 있길 항상 기도한다.

사전 질문에 답하는 김용숙 작가
사전 질문에 답하는 김용숙 작가

|세상의 시선

믿고 살아볼 만한 세상
자신만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경험 쌓는 독자 되길

Q. 작가님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믿고 살아볼 만한 세상으로 비친다.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다. 소수의 인물로 인해 가끔 악해 보일 때도 있지만, 이 세상은 긍정적인 사람들과 선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만 더 밝게 비추자.

Q. 마지막으로, 투데이N 독자들에게 권면의 한마디 해 달라.

상황이나 환경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시 일어나 회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장애인들 또한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이 조금이나마 용기를 갖고 예술 계열로도 진출할 수 있길 소망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만의 울타리 속에 갇혀있는 분들이 많다.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밖을 바라보자. 이들이 많은 사람과 대인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도전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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