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형교회인 상당교회를 은퇴하고, 후배 목회자들에게 목회의 노하우를 전하는 상담 사역을 펼치며 인생 2막을 써 내려가고 있는 정삼수 원로목사를 만나 그의 삶과 사역, 세상을 향한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보았다.

ㅣ 삶의 시선

"하나님과의 로맨스... 나의 삶은 로맨스였다"

목회자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 이후 나의 삶은 하나님과의 진지한 사랑이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고난도 뛰어넘을 수 있었고 지루하지도 않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로맨스'였다. 사랑 속에 살아온 인생이었다.

크리스찬하우스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정삼수 목사
크리스찬하우스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정삼수 목사

어려서 우리 집이 예배당이었다. 그래서 무비판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됐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6.25 이후 폐허 된 그때, 복음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우리 집 사랑방이 예배당이 됐다. 그렇게 난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게 됐고 집사, 회계 집사, 성가대를 했다.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일대일 만남이 없이 배워진 신앙, 습관적인 신앙이었다.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되었다는 심정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새벽기도 시간에 강한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철저하게 눈물로 회개했을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라는 베드로에게 주셨던 그 말씀을 받은 아침 그때부터 나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내 인생을 즐기며 살아왔는데 그 이후에는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왔다.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게 나의 삶이다.

"교사가 더 편하고 좋은데 왜 그만두고 목회자가 됐나?"

대학 다닐 때 총장이 나한테 한 말이다. 나는 소명 때문에 목회자가 된 거지 출세하려고 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냥 편하게 살려면 교사의 길로 갔을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신학교를 가려고 보니까 4년제 대학이 필요했다. 그래서 3년간 대전에서 영동의 시골 분교로 왕복 4시간을 출퇴근하며 집에 돌아오면 야간대학을 다녔다. 영양실조로 쓰러져 아스팔트가 내 이마를 쳤다. 걸을 때 땅이 물렁거리게 느껴질 만큼 너무나 힘들게 공부했다. 그때 그 고생들은 다 말할수도없다. 소명이 없이는 절대 못할 일이었다.

30년 후, 한남대학교 제19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정삼수 목사
30년 후, 한남대학교 제19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정삼수 목사

사울이 바울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30년 후에 난 그 야간대학교 이사장이 됐다. 목회자가 되는 것이 대통령 되는 것보다 더 좋았기 때문에 나는 목회자가 된 것이다. 그냥 적당히 학교 잘 나오고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목회자 괜찮을 것 같다' 이래서 된 목회자가, 그렇게 시작한 목회가 아니다.

ㅣ 사역의 시선

상당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은 '여름수련회'와 '성령의 역사' 였다

교수님의 소개로 상당교회 장로님 두 분이 나를 찾아오셔서 청빙서를 주셨다. 이력서를 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때 나는 부목사로 있었고 또 대학원 공부도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간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져서 가게 되었다.

기도원에서 진행된 여름수련회
기도원에서 진행된 여름수련회

41살에 상당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을때에 교회 개척을 한지 9년된 교회였다. 부임 후 3,000명이 한자리에 앉아서 예배할 수 있는 예배당을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의 능력을 주셨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예배당 공간이 부족해서 유리창을 뜯고 성전 옆구리를 터서 100평을 붙였다.

86년부터 여름수련회 성령운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30명의 성도와 함께 버스로 공주에 있는 전기도 안 들어오는 기도원에 갔다. 뜨겁게 기도하며 30명 전체가 성령 세례를 받았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고 방언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소문이 나니까 다음 수련회는 2배가 모이고 나중에는 2,000명 이상이 되니까 데리고 갈 기도원이 없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새성전(청주 미평동)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크리스찬하우스 외경
크리스찬하우스 외경

크리스찬하우스는 은퇴목사와 선교사등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든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이다

은퇴하고 개교회가 할 수 없는 일, 지역교회 목회자가 모이고 성도들이 모여 쉴 수 있는 장소 ‘크리스찬하우스’를 마련했다. 크리스찬하우스는 다른 이름으로 '친구의 집'이다.

예수님의 향기로 가득한 이곳은 1층 카페-아가페부터 월드휴먼브릿지, 충청노회 사무실, 해비타트, 의사선교회 누가회 등 선교기관들이 들어와 있고 목회 상담실도 있다. 3층은 선교사들을 위한 쉼터 공간이다.

4층 아가페홀은 다양한 세미나와 예배공간으로 쓰인다. 은퇴한 목사님들을 위한 은목 예배가 드려지고 다문화가족이나 목회자를 위한 스몰웨딩 결혼식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후배 목회자들과 함께 목회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크리스찬 아카데미' 빌드 업 더 처치(Build up the church)세미나를 매월 진행한다. 교회를 일으키려면 목회자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쓰일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크리스찬하우스다.

ㅣ 생각의 시선

해비타트 충북·청주지회 초대 이사장을 지낸 정삼수 목사
해비타트 충북·청주지회 초대 이사장을 지낸 정삼수 목사

요한 1서 4장 16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질서’ 그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제일로 사랑한다는 ‘구원 질서’ 두 질서 속에 내가 있다. 나를 제일 사랑한다는 말은 비교급이 아니라 절대급이다. 절대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제일 사랑한다’ 이게 바로 목회의 기본이고 전부이다.

ㅣ 세상의 시선

한국교회의 위기라고들 하는데 교회가 위기가 아니다 목회자가 위기다

우리 목회자는 '세상의 직업'을 가진 게 아니고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성령의 감동 없이 지식을 전하면 지식으로만 남지만,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면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왜 복음을 전하지 않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너를 용서했다는 걸 전해야 되는데 오늘도 자꾸만 십자가를 지라고 하고 율법으로 그냥 죄인을 만드니까 교인들이 도망간다. 천국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아니라 천국을 왔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이여 의인되려고 하지 말길 바란다. 주님을 사랑하려고 해라. 주님을 사랑하면 의인이 되는 것이다. 의인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 의인이다. 내가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 절대 아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DNA를 물려받은 천국 백성이다

이 자부심으로 살아야 한다. 이 진리의 허리띠가 든든하게 있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너무 의인되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너무 잘난 척도 하지 말고 죄인이라고 차별하고 자괴감으로 무너지지 말고, '주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고 '나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성도인 것이다.

정 목사는 마지막으로 투데이N 피플 독자들을 위해 12글자로 인사를 전했다.

"사랑해요 그리고 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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