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힘쓰는 고태식 목사(한들교회)의 사진-
-경남 함양군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힘쓰는 고태식 목사(한들교회)의 사진-

남유다의 제12대 왕인 아하스(초대 왕 사울과 찬탄왕 아달랴 제외)는 우리를 참 당황하게 만든다. 그의 아버지 요담은 솔로몬의 손자인 아비야 왕 이후 170년 만에 흠을 찾을 수 없는 왕이었다. 그런데 아하스는 아버지의 멋진 신앙을 다 버리고 엉망진창이 되는 길을 택했다.

이 아하스는 악한 왕 정도가 아니었다. 요아스-아마샤-웃시야와 같이 처음에는 선한 왕이다가 중간이나 끝에 가서 실패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이런 그의 모습을 역대하 기자는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대하 28:2)라고 말한다. 남유다의 왕이라면 “다윗의 길로 걸었다”이거나, 설령 그렇지 못하면 “다윗의 길로 걷지 못했다”가 정상인데, 그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아합과 같은 왕들의 길로 걸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소극적 죄인’의 모습이 아닌 ‘적극적 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구체적인 죄악의 모습은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더 나아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몰렉에게 분향하고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는 일을 했다.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는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다. 우상숭배에 있어 그는 종합선물 세트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심각한 악을 행한 사람을 하나님이 그냥 두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연합군을 이루어 남유다를 쳐들어오게 하시는데, 전쟁이 있은 하루에만 남유다의 용사 12만 명이 죽는 엄청난 패배를 당하였다. 이때 아하스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도 죽을 만큼 남유다는 철저한 패배를 당하였다.

전쟁은 12만 명이 죽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북이스라엘 군대는 남유다의 아내와 자녀들을 합하여 20만 명을 포로로 잡아 북이스라엘로 끌고 갔다. 용사 12만 명의 죽음과 20만 명의 포로는 하나님의 심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심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사랑의 매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8절이 말씀한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하나님의 마음은 당신의 백성이 ‘사랑의 매’를 맞고 정신 차린 후 빨리 돌아오라는 것이다. 죄악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은혜의 다른 모습이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오뎃이 승리하고 돌아오는 북이스라엘의 군대를 보며 말한 것에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남유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기셨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다”(대하 28:9-11).

20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포로를 얻었는데, 어떻게 보면 생뚱맞은 이 선지자의 말을 들은 북이스라엘의 지도자 몇 사람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그 결과 포로들의 벗겨진 옷을 다시 입히고,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약한 자들은 나귀에 태워 남유다로 돌려보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었다.

역대하의 말씀은 바벨론의 70년의 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로 추정되는 저자가 폐허와 같은 나라를 재건하며 백성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기 위해 기록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므낫세와 함께 남유다 최악의 왕 랭킹 1, 2등을 다투는 아하스의 죄악으로 포로로 끌려갔던 20만 명이 돌아오게 되는 사건은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큰 위로를 줬을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하스의 죄로 인해 죽고, 옷과 신발이 다 벗겨지고, 상처가 터져 있는 북이스라엘로 붙잡혀가 종으로 살고, 그 자손들까지 종이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되는 절망이 찾아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정말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당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고, 은혜이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될 때 이 말씀을 꼭 기억하라. 아하스가 뿌려놓은 깊은 절망감이 우리 가운데 몰려와도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말이다. 바로 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축복의 문을 열게 됨을 말이다. 바로 이것이 실패 중에도, 절망 중에도,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는 근거가 됨을 말이다.

2020년 추수감사절을 맞이 한다. 코로나 19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친 암담한 상황에서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아하스 시대 그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의 빛을 비춰주신 하나님을 묵상해 보라. 400년 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추위와 배고픔, 102명 중 절반이 죽은 가운데서도 불평과 원망이 아닌 추수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렸던 그 마음을 잊지 말라. 내가 지금 절망의 깊은 터널 속에 있다면 불평과 원망이 아닌 감사로 응대해 보라. 당신의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 내 삶에 절망감이 밀려오고, 실패가 닥칠 때 나의 시선을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소서.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넘쳐 입술에서 감사가 떠나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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