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인생은 수많은 만남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좋은 사람과의 의미 있는 만남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의미 없이 단순히 스치며 지나가는 만남도 있다. 가령 운전 중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이런 만남까지 생각한다면 인생은 수많은 만남으로 수놓아져 있다.

동화작가 정채봉은 이 만남에 대해 아주 유명한 글을 적었다. 그는 여러 형태의 만남을 말한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나는 생선과 같은 만남,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는 꽃송이 같은 만남,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닳아 없어질 때는 던져 버리는 건전지와 같은 만남,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는 지우개와 같은 만남을 말한다. 그러면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말하는데,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라고 한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는 만남 말이다.

그렇다면 역대하 33장에 나오는 므낫세라는 사람과의 만남은 어떨까? 동화작가 정채봉이 말한 생선, 꽃송이, 건전지, 지우개와 같은 안 좋은 만남을 모조리 묶어 놓은 만남과 같지 않을까? 그는 남유다의 제13대 왕인 성군인 아버지 히스기야(사울왕과 찬탈왕 아달랴 제외)를 이어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제14대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남유다 역사상 가장 오랜 55년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55년 동안이나 오래 통치하면 뭐하는가? 그는 16년간을 통치하며 나라를 완전히 우상숭배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할아버지 아하스와 100% 같은 복제판의 길을 걸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는데,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아세라의 목상을 만들었다(3절).

계속해서 그가 행한 우상숭배의 흔적을 역대하 기자는 남김 없이 적고 있다.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성전에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을 쌓아서 섬긴 것(5절)과 흰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하였고(6절),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였고(6절),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다(7절). 이런 므낫세의 행위가 얼마나 악했든지 하나님이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다고 한다(9절).

남유다의 왕으로서 하나님이 “멸하신” 모든 이방나라보다 악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갈 데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행위만을 본다면 회복될 소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악한 사람과 아하스의 꾀임에 빠져 함께 악을 행한 남유다의 백성들을 용서한다면 이전에 멸함을 당한 나라가 하나님께 “왜 우리를 멸하셨습니까?”라고 데모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앗수르의 왕이 남유다를 침공하여 므낫세를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간 것이다. 쇠사슬로 결박하여 끌고 갔다고 한다. 한 나라의 왕이 쇠사슬에 결박당하여 포로로 끌려갔다는 것은 작은 희망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의 끝판왕의 길을 걸었던 그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길이다.

그런데, 이런 그가 바벨론 땅에서 “여호와께 간구”하고,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12절), “기도”하게 된다(13절). 그런데 하나님은 이때 남유다 역사상 최악의 왕, 우상숭배의 끝판왕, 하나님이 멸하신 이방 나라보다 더욱 악을 행한 므낫세의 이 회개와 기도를 받으신다. 그리고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여 왕위에 앉히셨다.

우리 하나님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사람이라면 절대 이렇게 할 수 없다. 쉐키나의 영광이 빛나야 할 하나님의 전 안방에 이방의 신들을 끌어들이고, 온갖 나쁜 짓을 한 사람까지 회개하니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뭘 다시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을 하지 말자. 므낫세같은 인간말종까지도 회개하면 기회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말이다. 더 나아가 “저 사람은 절대 안 돼”라고 생각하며 내가 낙인찍고 포기해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이 못 고칠 사람은 없다! 하나님을 나의 범주에 집어넣지 말자. 크신 하나님, 회개할 때 무한대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이니 말이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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