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남유다 역사에 다윗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 받은 세 명의 왕이 있다. 여호사밧(대하 17:3), 히스기야(대하 29:2), 그리고 요시야였다(대하 34:2).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남유다 역사에 총 20명의 왕이 등장하는데, 그 중 최고의 평가라고 할 수 있는 ‘다윗의 길’을 걸었던 왕은 이 세 명 밖에 없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요시야이다. 그는 남유다의 제16대 왕으로 8살의 어린 나이에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 아몬을 이어 왕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 아몬(2년)과 할아버지 므낫세(55년)가 57년 동안 뿌려놓은 우상숭배를 일거에 척결한 위대한 왕이었다.

이런 위대한 종교개혁을 가능케 한 힘이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지배하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열여덟째 해, 그의 나이 26살이 되었을 때 우상숭배로 훼파된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수리했는데, 이때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신명기의 말씀이었던 것 같다. 요시야는 이 말씀을 듣는데, 그 순간 자기 옷을 찢었다. 이는 깊은 슬픔과 우상숭배로 찌든 선조 때의 모습을 회개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발견된 장소가 특이하다. 그것은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에…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대하 34:15)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헌금함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성소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헌금궤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성전 안에는 세 개의 뜰이 있었는데, 제사장만이 갈 수 있는 제사장의 뜰이 있고, 다음으로 유대인 남자까지 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뜰이 있는데, 이곳은 이스라엘의 뜰 바깥에 위치한 곳으로 모든 유대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헌금함은 여인의 뜰에 있었다. 그러니까, 헌금함이 지성소를 기준으로 보면 가장 먼 곳이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할 곳이 지성소인데, 왜 하나님의 말씀이 여인의 뜰에 있는 헌금함에 있게 되었을까?

므낫세와 아몬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이들은 성전 마당에 우상을 세웠던 우상숭배로 찌든 왕들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지성소에 있는 것을 그냥 두겠는가? 특별히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이니 말이다. 그래서 제사장이 이 말씀을 헌금함에 깊숙이 숨겨놓은 것 같다.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시대 하나님께 헌금 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헌금함은 구석에 방치되어 있지 않았겠는가? 바로 그 헌금함에 말씀을 숨겨놓은 것이다. 요시야가 하나님의 말씀이 헌금함에서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선포한 것이다. 그러자 왕부터 옷을 찢으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기 원했다. 그래서 선지자를 찾는데,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온다. 이때 찾은 선지자가 ‘훌다’라는 사람이다(대하 34:22). 성경 속 드보라와 함께 두 명 밖에 없는 여선지자이다. 드보라가 사사라는 점에서 훌다가 유일한 여선지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물론 느헤미야 6:14에 나오는 노아댜가 있지만 그녀는 거짓 여선지자였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히 임하는 곳에 지독한 남녀의 차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화된 오늘 우리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니 그 고대사회에서 남녀의 차별이 사라진 것이 너무나 놀랍다.

그뿐 아니다. 이 훌다는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살았다. 이곳은 북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망한 후 피난민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도 말하면 북한이나 중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에서 온 분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한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되자 지역과 출신의 차별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선지자 훌다의 남편의 직업이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여선지자의 남편도 신분이 결코 높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훌다는 수많은 약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시야는 이 약점을 보지 않고 그녀를 통해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했다. 요시야가 다윗의 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인생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고, 성도라면 이런 멋진 인생을 꿈꿔야 한다.

사와로 선인장 @출처=Pixabay의 Falkenpost작가 이미지
사와로 선인장 @출처=Pixabay의 Falkenpost작가 이미지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가면 사와로 선인장이라는 큰 선인장을 볼 수 있다. 수명이 150년 이상이나 되고 다 자라면 키가 15m까지도 자라는 큰 선인장이다. 그런데, 애리조나 사막은 한낮에는 섭씨 50도를 넘어갈 만큼 뜨거운 곳이다. 비도 거의 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곳에서 그렇게 큰 선인장이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을 수가 있을까? 해답은 바로 뿌리이다. 사와로 선인장은 뿌리가 땅 밑 수 십 미터까지 사방으로 뻗어 있다. 그렇게 뿌리를 깊이 넓게 뻗어서 조그마한 습기라도 다 빨아들이니까 그렇게 건조한 곳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인생이 바로 이렇다. 말씀이 지배하는 인생은 극심한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남은 사와로 선인장처럼, 시편 1편의 시냇가의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인생이 이런 복 있는 인생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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