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무서워했던 아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목회자로
독신의 은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남편이자 한가정의 아버지로
어려울 때 십자바위를 찾는 기도의 사람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고현교회. 어려운 시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목회자가 되고, 하나님의 마라토너로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박정곤 목사를 만나봤다.

인터뷰 중인 거제 고현교회 박정곤 목사
인터뷰 중인 거제 고현교회 박정곤 목사

I 삶의 시선

Q.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순간은?

고향이 경남 창원군 북면 내곡리이다. 다섯 개의 마을이 있는데 아직도 예배당이 없는 산골 마을에서 살았다. 학교가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그 학교 근처에 온천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무서워서 교회에 가지 못했다. 우리 어렸을 때는 나환자가 교회에 많았고 나환자가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소문도 있어서 교회는 무서웠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안 그랬다. 우리 집도 어렵고 가난했다. 그래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벌러 마산으로 갔다. (70년대 창원은 산골 동였고 마산은 큰 도시였다) 그렇게 16세, 돈을 벌기 위해 갔던 마산에서 교회에 가게 됐다. 1973년 2월 서마산교회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그해 11월 23일 학습을 받았다. 학습을 받으면서 목사님이 성경 읽기와 기도,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가르쳐 주셨고 10대에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게 됐다. 그것이 첫사랑이다. 무섭고 두려웠던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 10대 때 첫사랑이 내 평생의 신앙을 이끌고 있다. 

Q. 당신의 삶에 개입하셨던 하나님은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인도와 개입은 많지만, 두 가지는 이야기 하고 싶다. 나는 교회를 무서워하던 사람인데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마산으로 왔을 때 마산 부림시장에서 일을 하면서 북마산감리교회 부설 웨슬레고등공립학교(1958년에는 회원동 480번지에 설립되어 정규 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많은 불우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2학년으로  편입학되었다. 웨슬레고등공립학교는 기독교 미션 스쿨이었고 편입 후 학교에서 일요일 교회 가서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그래서 도장을 찍기 위해 교회에 갔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갔는데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6개월 이상 다니다 보니까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학습을 받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던 나에게 박순명 장로님의 딸 박은주 선생님의 인도로 학습을 받고 1974년부터는 신앙에 불이 붙었다. 거의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았고 새벽 기도도 갔다. 신앙생활에 열심히던 때 하나님께서 정말 큰 은혜를 주셨는데 신약성경을 3번 읽으라는 마음의 소원을 주셨다. 성경을 3번 이상 읽고 나니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주신 말씀이 로마서 14장 7절, 8절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는 말씀을 붙들게 되었고 너무너무 목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께 ‘목사 되게해주십시오. 그러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마태복음 19장에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고자 이야기 나온다. 이 말씀이 내 어린 마음에 “결혼하는 것보다 결혼 안 하는 것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겠구나” 풀타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서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독신의 은사를 주셨다.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 2학년, 좀 늦게 신학을 시작했고 신학교 2학년 때 나침반 사에서 나온 은사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 25가지 중 만점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순교의 은사'다. 또 하나가 ‘독신의 은사’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결혼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배우자를 예비해 놓으셨다. 기도하는 중에 ‘교회 천장로 딸과 결혼 할 것이다’고 말씀해 주셨다. 고민할 것도 없이 교회에 천장로님이 한 분 밖에 안 계셨고, 자녀가 3명인데 아들 두 명에 딸이 한 명이었다. 나보다 8살이 어렸고 내가 서른이었고 아내는 대학생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나면 나머지는 절대복종 절대순종이다. 순종하면 된다. 주변에서도 교회에서도 내가 결혼 안 한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믿지 않았고 하필 그날이 1989년 4월 1일 만우절이라 결혼식에 안 온 친구들도 있다. 완벽히 은사가 충돌한 사건이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해서 지금의 교회목회 사역을 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교회 사역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I 사역의 시선

Q. 지금 맡고있는 일/사역을 소개한다면?

현재 맡고 있는 거제 고현교회 담임목사 위치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작년에 경남기독교총연합회 21대 대표회장으로 섬겼다. 그리고 선교에 관심이 많아서 미전도종족선교연대 ‘한국 엄마’ upma라는 단체 제3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다음 복음의 기동타격대 한국 OM에서 부산 울산 경남 지부장을 맡고 있고, 허드슨 테일러에게서 시작된 OMF선교회 이사로 섬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경남 경찰 복음화를 위해서 경남 경찰청 경목을 섬기고 있고, 특별히 실크로드 구소련과 중앙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2년에 한 번씩 초교파적 실크로드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방송 선교에서도 CTS경남방송 운영 이사장을 맡고 있고, 극동방송, CBS, 지역/교단 기독교 신문들을 돕고 있다.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일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 함께 하면 된다. 나는 기독교 역사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마라톤은 혼자서 42.195km 달려가지만, 우리 복음의 역사는 릴레이 마라톤이다. 열두 제자에게 전해졌던 마라톤 바통이 이어 오다가 지금 이제 내게 주어졌다. 그러면 내가 바통을 쥐고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박정곤 목사가 사역하고 있는 거제 고현교회
박정곤 목사가 사역하고 있는 거제 고현교회

Q. 사역의 기본 방향과 지향 방향은?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 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사역한다. 삶의 자세와 태도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이다. 내가 수고하고 잘하는 것 사람들이 몰라줘도 하나님은 아신다. 사람들은 나의 허물과 실수를 잘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니까 회계하고,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다.

Q. 일/사역 가운데 감동,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나는 군대에 갔다 와서 27살에 대학에 들어갔다. 고신대 신학과 3학년 때인 1989년 모 교회, 서마산교회에서 중고등부 담당 전도사를 하게 됐고 그해 여름에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셨다. 그때 중, 고등부 학생이 120명 전후로 출석했는데, 9월 30일에 친구 초청 잔치를 계획하고 1,000명을 목표로 정했다. 1,000명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친구 초청 잔치 전, 여름 수련회를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주제로 3박 4일로 교회에서 개최했다. 기도와 사모함으로 준비했는데, 수련회 마지막 날 성령이 임재하셨다. 마지막 날 특강을 하는 가운데 공간을 꽉 채우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그리고 그날 밤 기도 시간에 방언과 예언, 각종 은사를 주셨다. 그날 밤 아이들은 종을 안 치면 기도를 그칠 줄 몰랐다. 성령이 임재하셔서 기도회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수련회 이후 매일 저녁 기도회를 시작했고 40여 명의 아이가 참석했다. 서마산교회 밖 왕복 4차선 도록 건너편에서도 기도 소리가 들릴 만큼 뜨거웠고, 아이들은 방학인데도 전도를 나가 한주에 20명~30명이 등록을 해, 8월 말 교회학교 출석이 250명이 됐다. 그리고 드디어 9월 30일 토요일 930명 정도가 친구초청 잔치에 왔고, 그 가운데 200면 정도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다음날 주일은 350명이 넘게 출석했고, 이후 꾸준히 3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예배에 참석했다. 성도 수의 성장이 아닌 부흥이었다. 그 부흥을 잊을 수가 없다.

또 하나는 2020년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맡았을 때  코로나19로 인해서 한국 교회 모임을 할 수 없었다. 작년 8월 23일 주의 일을 계기로 김경수 도지사가 경남 전역에 모임 자체를 금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도지사 면담을 신청해서 그 다음 주 화요일 6시에 면담 하기로하고, 월요일부터 5일 동안 교역자들과 주기철 목사님이 기도 하셨던 무학산 십자바위에 올라가 기도했다. 교회에서 무학산 입구까지 차로 1시간 30분이 걸리고, 30분 등산을 해야지 십자바위에 도착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태풍이 몰려오는 중에도 십자바위에 올라 새벽 2시까지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도지사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한 공간에 50명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교회에 숨통이 트이는 역사가 일어났다. 전국이 예배드리지 못하고 있을 때 경남을 시작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이 기도 하시던 무학산 십자바위에서 코로나19 종식과 대변예배를 위해 기도한 고현교회 목회자들
주기철 목사님이 기도 하시던 무학산 십자바위에서 코로나19 종식과 대변예배를 위해 기도한 고현교회 목회자들

I 생각의 시선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배웠던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 한상동 목사님 ‘여주동행’, 주남선 목사님의 ‘지사충성',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원자탄’ 그리고 설교가 조지 휫필드, 부흥가 무디 등이 영향을 끼쳤고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 책 ‘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교수님 전집을 다 읽었고 삶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다.

Q. 어떠한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가장 기준으로 삼는 것은?

선택에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 가장 중요한데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지만, 결론은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만 물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확인만 되면 이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소중히 여기고 달려가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Q. 나에 대해 책을 쓴다면 머릿말에 남길말은?

“하나님의 기쁨과 자랑이었던 사람, 생존을 위해 살지 않고 사명 위해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이 문구가 내 중심을 이루고 있다.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우리는 천국 백성이다. 꽃이 아무리 붉고 아름다워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10년을 넘기지 못하듯이 우리는 짧은 나그네 인생이다. 영원한 천국이 우리가 살 곳이다. 이 땅에서 좀 더 잘 살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 하는데 우리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 천국에서의 상급과 면류관을 위해서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각자의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묻기 바란다. 내 인생의 꿈과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아 사명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란다.

I 세상의 시선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세상이 너무 죄가 너무 많다. 하나님께서는 조금 잘못했다고 손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면 심판 밖에는 없다.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다. 지금이 그러한 때인 것 같다. 바른 가치와 윤리, 도덕이 사라졌다. 못 배우거나 가진 것이 없는 게 아닌데 수치와 부끄러움이 없고 철면피 같다. 우리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정직과 진실이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지금도 읽어본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지고 과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낙태로 죽어가는 생명이 100만 명이다. 지난 14년 동안 저출산 문제 해결하려고 국가 495억 원을 쏟아부었는데 해결 못 했는데 낙태법만 유지하면 저출산 문제 해결 되는데 너무 안타깝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인간의 선한 양심이 살아 있으면 좋겠다. 지금 너무 무례하다. 우리 국민들이 말과 행동에 예의가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모두가 예의범절이 살아 있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국민을 행복지수가 높아졌으면 좋겠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면 좋겠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개인을 가정을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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