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대의 한국교회를 ‘갈대상자 속에 있는 어린 모세’로 진단하며 어려움을 깨닫고 돌아서는 ‘생명 지향적인 교회’가 되기를 꿈꾸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이건희 목사. ‘주께로 돌이키사, 진리와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란 주제로 한국기독교장로회 105회기를 이끌어 가는 이건희 총회장의 삶과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기독교장로회 105회 총회장 이건희 목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105회 총회장 이건희 목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삶의 시선

고등학교 1학년 때 청년부 학생회장 활동
목사의 뜻을 품고 신학교로 진학

117년 역사의 청주제일교회로 다시 돌아오다

Q.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경험했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내가 지금 시무를 하고 있는 청주제일교회는 나의 모교회다. 그러기 때문에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교회를 출석했다고 볼 수가 있고 우리 청주제일교회와 함께한 역사를 따지면 나의 증조부께서 청주제일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에 나의 손녀까지 합산을 해 보면 6대째 청주제일교회와 관련이 있는 집안이다. 청주제일교회에서는 아마 두 번째로 긴 신앙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집안일 것이다.

보통 모태신앙 그러면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닌 거 같다. 나도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을 체험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청주제일교회가 설립한 미션스쿨인데 방학숙제가 방학 동안에 교회를 출석하고 주보를 제출을 하는 것이었다.

숙제를 하기 위해서 교회에 열심히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교회에 열심히 나가니까 학생회 선배들이 ‘아 이 친구를 학생회장으로 세워야 되겠다’ 해서 학생회장이 됐다. 

당시에 중고등부 학생들이 한 200명가량 됐으니까 적지 않은 숫자였다. 내가 원래 수줍음도 많은 사람이고 또 리더십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학생회장 일을 하려다 보니까 대표 기도를 해야 되고 또 나가서 사회도 봐야 되고 연합사업 같은 것도 해야 되는데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예배당 1층 기도실에 수시로 가서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기도실 한 구석에 무릎 꿇고 앉아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다가 보니까 기도를 통해서 힘을 얻고 그러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아 내가 목사가 되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됐다. 

그때 했던 기도의 내용, 태도, 마음 자세는 지금도 못 넘어서는 거 같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뵙게 된 그런 계기였던 거 같다. 나한테는 둘도 없는 시기였다. 

청주제일교회는 올해로 11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뿌리가 깊은 교회이다.
청주제일교회는 올해로 11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뿌리가 깊은 교회이다.

Q.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는데, 그때 어떤 기분이었나? 

부교역자 생활을 한 6년 정도 하고 서울로 와서 서울 한일교회 부목사 5년, 송파에 있는 초음교회 담임목사 9년, 총 14년 정도를 외지 생활하다가 청주제일교회에 담임목사 청빙을 받아서 갔다. 그때 내 심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두려움 그 자체였다. 

목회는 물론 사람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 선후배들도 많고 또 나를 어려서부터 지켜본 분들도 많고 더군다나 고등학교 은사 분들이 장로님으로, 당회원으로 많은 분이 계셨던 때였다. '이거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하는 두려움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좋은 목회자는 교회가 만든다고 워낙 역사가 깊고 좋은 교회에 있다 보니까 총회장까지 된 거 같다.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지금도 늘 긴장하고 두려움 속에 있다. 

Q. 목사님의 삶에 개입하셨던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었나? 

이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 거 같다. 우리 집안 손녀까지 6대째 크리스천 집안인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의 삶의 모든것이 주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던 일이다. 

굳이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원래 어려서부터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체질이다. 한 세 살 정도 됐을 때 여름에 집에 돌아왔는데 너무 목이 마르니까 부엌에 선반 위에 있는 음료수 병 같은 거 하나 잡아 가지고 마셨다. 내가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어머님 얘기를 통해 들어보면 그 음료수 병에 들어있던건 빙초산이었다.

그때 죽었어야 되는데 죽지 않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내장이 녹아 배가 막 부풀어 올라서 청주제일교회 옆에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원장님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생명을 건졌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절대적으로 보호하시고 살려 주셨다. 

ㅣ사역의 시선

살아있는 역사인 청주제일교회를 섬기며 지역사회를 품는 목회
코로나 시대에 한국기독교장로회 105회 총회장직 감당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사역

Q4. 청주제일교회는 충북지역의 모교회로써 117년의 역사 속에서 교육과 선교로 지역사회를 품어 왔는데, 16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지금까지 펼쳐 오신 목회의 방향은? 

우리 교회는 1904년에 미국 북 장로교회 파송 선교사 민노아 목사님이 세운 교회이다. 그때 민노아 선교사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청주 지역의 유수한 청년 들이었다. 청년들이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을 신앙으로 표출하고 교회 생활을 통해서 조직화 되었다. 지금도 청주제일교회가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교회라고 하는 의식이 굉장히 강하다. 

그즈음에 탄생된 교회들 중 지역의 중심이 된 교회들은 공통적으로 했던 일들이 있다. 전도와 선교활동이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흔적을 찾자면 첫 번째로 선교 활동과 전도활동을 열심히 했다. 많은 교회들을 세웠고 청주 시내에 적어도 50년 이상 된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교회랑 직간접적으로 다 연관성이 있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돼라’라고 하신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 

두 번째가 교육사업이다. 이미 민노아 선교사가 와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우리 교회 청년들 중심으로 광남학교라고 하는 게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 청주 영운동에 있는 청남초등학교의 전신이다. 그래서 청남초등학교의 역사는 우리와 똑같다. 그리고 지금 운영되고 있는 청주 최초의 중고등학교인 세광중학교 세광고등학교, 지금은 없어졌지만 최초의 사립유치원인 상당 유치원을 운영했다. 뿐만 아니라 불우한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학교도 여러 군데 운영 했다. 그래서 교육에 관련된 내용은 지금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를 하면 애국애족 정신이다. 일제강점기의 초기에 탄생된 교회라고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교회의 목사님 이었던 분 중에 부통령까지 지내셨던 함태영 목사님이 계신다. 그분이 계실 때 청주경찰서 부근에 있었던 청주지역에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 있었다. 고려 시절 건물인데 건물 이름을 조선시대 때 한명희 씨가 망선루라고 이름을 지어 줬다.

일본 사람들이 신작로를 내면서 그 건물을 다 해체 해 버렸다. 민족적인 울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서 함태영 목사님이 중심으로 청주제일교회가 거금 100만 원을 들여 망선루 해체한 것을 그대로 교회로 옮겨 지었다. 그래서 한 70년 정도 교회가 잘 지키고 있다가 청주시로 다시 보내서 지금은 청주 중앙 공원에 망선루가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6.25 이후에 공산주의 사상이 침투될 때 우리 교회 청년과 교인들 중심으로 반공운동을 엄청나게 열심히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근의 일을 이야기하자면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처럼 70년대, 80년대 민주화운동 요람이 청주제일교회이다. 어느 곳도 민주화운동을 위한 집회 장소를 허락하지 않을 때 청주제일교회가 유일하게 허락했다. 교회가 생긴 초창기부터 민족을 사랑하는 흐름이 계속 이어졌다. 이 흐름을 계속 이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임해서 시대 상황에 맞추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복지 선교를 하기로 했다. 외국에서 들어와 노동을 하시는 분들을 위한 일을 해야 되겠다 싶어 교회 상가 건물 하나를 무상으로 내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주여성인권센터를 계속하고 있다.

또한, 푸드뱅크 사업을 하고 있고 노인 복지 센터를 운영해서 그분들에게 한글도 가르치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도록 한다. 솔직히 무슨 전도하기 위해서 그런 생각은 없다. '우리 교회가 여기 있다', '교회가 이런 일도 한다' 하는 것을 빛과 소금처럼 그러나 큰 소리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선교하고 있다.

이건희 목사는 코로나가 한창 확산되던 2020년 9월에 총회장직을 맡았다.
이건희 목사는 코로나가 한창 확산되던 2020년 9월에 총회장직을 맡았다.

Q. 한국기독교장로회 105회기 총회장으로 당선되면서 가장 중심으로 두었던 사역의 방향은? 

작년 9월에 총회장이 됐고 시작할 때 이미 코로나 상황이었다. 끝날 때도 마찬가지일 거 같다. 직전 회장은 중간에 코로나를 맞았고 다음 총회장은 백신을 맞고 좋아지면서 코로나를 좀 벗어난 총회장이 될 거 같다. 하지만 나는 100% 코로나 총회장이다. 원래 총회가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또 총회장으로 피선될 때 총회 모습은 대면 총회가 아니고 비대면 온라인 총회를 통해서 피선이 됐다. 그것부터 비정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뚜렷하게 어떤 방침을 가지고 총회장직을 수행하기는 외부적으로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 있는 교우들 또 특별히 성직자들은 총회장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 해도 위로가 되는 거 같다. 총회장이라고 하는 그 존재 자체가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는 큰 위로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 설교를 통해서 행사 때 늘 격려해 드리고 평화를 빌고 또 위로를 베풀고 하는 것들이 핵심적인 활동이다. 

다른 게 있을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큰 집회 같은 건 못 하지만 해야 할 일은 거의 다 한 거 같다. 나는 총회장이 흔들림이 없이 무게 중심이 되어서 존재한다고 하는 거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그걸로 족하다. 

교회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교회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현수막을 걸었던 청주제일교회
교회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교회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현수막을 걸었던 청주제일교회

Q. 작년, 코로나가 교회로부터 확산하며 사회적인 질타가 이어졌던 상황 가운데 ‘교회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현수막을 교회 전면에 걸며 화제가 되었다. 어떤 마음으로 걸었나? 

현수막을 내 건 날이 3월 3일로 기억이 된다. 전날이 주일인데 그 주일부터 본격적으로 비대면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모두 다 불안해하고 예배와 교회의 일상적인 활동이 멈춰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고 하니까 많은 교회들이 종교탄압이라고 했다. '이런 반응은 옳지 못하다'라는 것이 나로 하여금 현수막을 걸게 하는 요인이 됐다. 원래 오래된 교회가 굉장히 보수적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100년도 넘은 교회가 잘못했다고 그렇게 현수막을 걸으니 매스컴에서 좀 예의주시를 했던 거 같다. 좀 부끄럽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을 한 건데 교인들 보다도 목회자들 가운데에 '왜 그런 일을 했느냐'라고 '종교탄압 중인데 교회가 뭘 잘못했냐'라고 욕하는 분들도 많았다. 

우리는 지금 개혁교회 신앙 전통을 물려받은 개신교회들이다. 마틴 루터가 흑사병 전염병 사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과 성직자들이 가져야 될 입장, 말하자면 교회가 어떤 입장과 태도를 가져야 되느냐 하는 것에 대해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해 놓은 게 있다. 

이럴 때일수록 모이는 거 하지 말아야 된다. 집에 머물러야 된다. 소독 철저히 해야 된다. 나 때문에 또는 교회 때문에 이웃의 생명의 해를 끼치는 것은 안 되는 일이다. 이게 우리 개혁교회를 세우게 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마틴 루터가 했던 이야기다. 지금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이 이 정신을 물려받은 교회들인데 그 정신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500년이 넘는 개혁교회 신앙 전통에도 투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 속의 교회이고 항상 사람과 사회와 세상을 위해서 어떻게 헌신하고 봉사하고 돌볼 것이냐가 중요하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피조물들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할 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또 행동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Q. 총회장직을 감당하며 내린 결정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하고자 하는 사역은? 

나는 그냥 총회장으로 있는 것 자체로도 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105회 총회를 비대면으로 하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끝냈어야 됐고 폐회를 못 하고 정회를 했다. 다시 속회를 해야 되는데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니까 속회 총회도 비대면으로 해야 되나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일하고 있는 지역 자치단체 청주시가 아주 크게 협력을 해 주셨고 또 청주시 기독교연합회에서도 도와주셔서 속회 총회를 실내 체육관에서 하게 됐다. 

그때가 제일 심적으로 부담이 됐던 거 같다. 왜 그러냐 하면 교회가 잘못했다는 현수막을 걸었는데 만약에 총회를 했다가 거기서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이거는 한국 교회 전체가 욕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앞서간다고 하는 한국 기독교 장로회는 뭐가 되며 총회장은 또 뭐가 되나 이것은 참 큰일이었고 나에게는 굉장히 결단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남은 임기 동안에는 9월 마지막 주간에 열릴 106회 총회를 대면 총회로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점차 좋아질 것이라고 보고 총회를 잘 준비해야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총회를 안전하게 그리고 국민이 볼 때도 불안해하지 않는 모습으로 총회를 준비하는 게 제일 큰일인 것 같다. 

미얀마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교회협 교단장 기관장 기관장에 참석한 이건희 목사
미얀마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교회협 교단장 기관장 기관장에 참석한 이건희 목사

Q.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개신교단 최초로 미얀마 민주주의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고 헌금을 모으고 있다. 미얀마를 어떻게 돕고 있나?

미얀마를 위한 기도 그리고 실제적으로 돕는 일들을 시작한지 꽤 됐다. 우리 교단이 얼마 전에 미얀마 사태가 참 험악하게 흘러갈때 외교부 청사 길거리에서 설교도 하고 기도도 하고 요구서를 미얀마 대사관 앞으로 또 외교부 장관 앞으로 보내기도 하고 했다. 또 각 지역의 노회 별로 미얀마를 위한 기도회와 후원금 모금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특별히 광주지역 노회와 성도들이 1980년도에 광주의 아픔을 미얀마의 아픔과 동일시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제일 먼저 그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본다. 

후원금을 전달할 때 미얀마에 직접 간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니까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태국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파송 선교사 한 분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전달되고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미얀마의 크리스천은 거의 다 카렌족이고 미얀마 정부군에 대항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종족이 카렌족인데 카렌족이 미얀마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태국 북부 쪽 산악지역에 카렌족이 많다.  그러기 때문에 그 선교사님이 미얀마에서 태국 산악지역으로 피난을 온 그 미얀마 사람들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고 교단적으로 돕고 있다.

ㅣ세상의 시선

카톨릭, 이슬람, 힌두교 등 타 종교에 대한 관심
인도의 선교지를 방문한 경험이 관심의 시작
성직자들이 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많이 가지길...

Q. 요즘에는 어떤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나?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나라고 종교 간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굉장히 부럽게 바라보기도 하기 때문에 성직자들이 타 종교들에 대한 이해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타 종교에 대한 공부를 좀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교회 예를 한번 들어 보면 우리 교회의 터전에서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 네 분이 순교했다. 그런 순교의 영성 같은 것이 나한테도 큰 영향을 끼치고 교회 존재 자체에도 그런 영향이 있는 거 같다. 그런데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천주교를 향해서 이단이라고 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나는 우려스럽게 보인다. 

몇 년 전 성탄 예배를 드릴 때, 속리산 법주사의 주지스님인 현조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다. 그분은 굉장히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던 분이었다. 어느 날 그분이 자기가 예수님 탄생하신 것을 예배에 참석해서 축하를 하고 싶은데 그럴 교회가 없었다고 했다. 그때 유일하게 제안을 받은 교회가 우리 청주제일교회였다. 

“스님이 교회에 와서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장로님들 의견을 구합니다”라고 당회에 얘기 했더니 만장일치로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 출생을 축하하러 오신다는데 그 신분이 누구든 가릴 이유가 없다’해서 그분을 성탄예배에 참석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당연히 축사를 부탁을 드렸다. 올라오셔서 축사를 하시는데 당신이 어릴 적에 교회 다녔던 얘기 불렀던 찬송 이야기하면서 교인들을 다 휘어잡고 재밌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같이 떡국도 나눠 먹고 헤어졌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사상적으로 특히 종교문제에 있어서 타 종교에 대한 이해, 인정이라는 개념이 아니고 이해의 폭을 좀 우리가 많이 높여야 될 필요성이 있다 하는 것이다. 

타 종교의 정체성이 뭔지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설교 시간에도 우리 교인들에게 타 종교에 대한 내용을 많이 하는 편이다.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가톨릭 자주 언급을 한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런 관심을 놓지 않을 것 같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사무실에서 신구임원간담회를 하는 총회 임원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사무실에서 신구임원간담회를 하는 총회 임원들

Q.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 책이나 인물이나 사건들이 있나? 

청주제일교회에 부임하기 3년 전에 서울동노회에서 목회를 할 때 거기 해외선교위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을 방문하러 인도를 간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도 같은 데를 왜 가?'라고 생각했다. 근데 집사람이 "당신은 목사가 되어서 인도 같은 나라도 안 가보고 목회를 하려고 그러느냐"라고 해서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 인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뉴델리에 있는 인드라 간디 공항에 도착을 해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받은 느낌이 여기는 특이한 나라구나 였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내년 안식년 때에 적어도 인도에 한 달은 와 있어야 되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다음 해에 인도에서 한 달 묵으면서 인도를 배워가기 시작했다.

내가 이 경험으로 배운 것은 타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야 된다 하는 것이다. 평화 중심 또 생명 중심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어차피 다른 종교인들과 산다고 할 때, 이웃이 되어야 한다.

ㅣ세상의 시선

공공의 유익을 위한 교회가 돼야 한다
우리는 분명히 세상 속에 있는 교회
끔찍한 시간을 기적의 시간으로 만들어가길

Q. ‘교회’는 무엇인가? 또 앞으로 ‘교회’는 세상 속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주님의 몸 된 교회,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그 장면을 성화로 그려놓은 대부분의 그림들을 보면 각자의 머리 위로 불꽃이 내려와 있는 모습들이 굉장히 많다. 대표적으로 엘 그레코 같은 사람이 화려하게 그런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맞는 말씀이다. 성령께서 각자에게 임하신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2장 7절 말씀을 보면 성령께서 각자에게 임하신 그 뜻이 우리 개역 개정판에서는 '유익을 위함이라'라고 되어 있고 새 번역 성경이나 공동 번역을 가보면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마틴 루터가 번역해 놓은 것을 보면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다. 나는 후자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이웃에 유익을 위한 교회가 돼야 되고 민족과 나라와 국가의 유익을 위한 교회가 돼야 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모든 창조세계 피조세계 가운데 분명히 존재하면서 유익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돼야 또 그리스도인들이 돼야 된다. 한국의 교회가 특별히 코로나 상황 속에서 그 신뢰도가 더 추락하게 된 요인 중에 하나가 공공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그걸 무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세상 속에 있는 교회다. 

요즘에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하는 신학의 흐름 중에 하나가 공공신학이라고 하는 흐름이 있다. 그것이 좀 우리나라에 좀 잘 정착이 됐으면 좋겠다. 

공동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교회라고 한다면 이미 교회가 아니고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이고 세상에 힘을 빼앗기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면 이것은 교회가 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Q. 독자분들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우리 독자 여러분 지금 얼마나 어렵게 생활을 하고 계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고 표현들을 한다. 실제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신앙적인 권면과 도전의식을 전해 드린다고 한다면 이 끔찍한 시간들을 기적의 시간들로 만들어가시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우리 교단의 105회 총회 주제가 ‘주께로 돌이키사 진리와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이다. 주께로 돌이키는 게 기적의 해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보인다. 말하자면 회개, 돌아서야 된다는 거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니 '근원은 어디 갔느냐?' 하면 말씀으로 돌아가는 거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돼 있는 성경 그 성경의 핵심적인 정신을 나는 진리와 사랑으로 보고 있다. 

우리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진리 가운데로 사랑 가운데로 행하면 그게 바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끔찍한 시간들을 기적의 시간들로 만들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신 일이라고 믿는다. 끔찍한 시간을 기적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우리 독자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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