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신앙관 본받아 믿음의 가정 만들어
신앙인이 가장 빛날 때는 위기를 겪을 때
의원 시절 성경적 가치관에 위배되는 악법들을 저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마산제일교회 조우성 장로. 경상남도의회 의원과 부의장을 역임하며 성경적 가치관에 위배되는 악법들을 저지하고 은퇴 후 인구보건복지협회 경남지회 회장과 경상남도의정회 회장,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등의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뿌리 깊은 유교 집안에서 어머니의 신앙관을 배우고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하며 살아온 조우성 장로의 사역과 삶을 들어봤다.

마산제일교회 조우성 장로
마산제일교회 조우성 장로

삶의 시선

신앙인에게 위기는 곧 기회!
유교적인 집안에서 어머니의 신앙 본받아
산 기도를 통해 만난 하나님

Q. 지금까지 장로님의 삶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드라마’라고 표현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평탄한 길을 살아왔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내 삶은 매번 고비와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유교적인 집안인 함안 조씨 가문에서 어머니를 통해 어렵게 하나님을 알게 돼 마산제일교회 장로로 섬기게 됐다. 청년시절 회사 부도의 위기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극복함으로써 정치계로 입문하게 되는 발판이 됐다. 도의원이 된 후에는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악법들을 막아냈다. 신앙인이 가장 빛날 때는 위기를 겪을 때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드라마틱한 삶을 살게 하신 것 같다.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언제인가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과정을 설명하려면 존경하는 우리 어머니를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앞서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나는 양반 의식이 강한 경남 함안 조씨 일가에서 태어나 강한 유교 문화권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일찍 복음을 받아드려 엄격한 유교사상 속에서 믿음을 지켜오셨다. 어머니는 수 많은 역경 끝에 아버지를 전도했고 복음의 불모지에 복음을 전파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신앙관을 보고 배우며 자라왔다.

청년시절 모교회인 함안 군북교회를 다니며 많은 청년을 만나 즐겁게 신앙생활을 했다.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 목사님과 함께 무학산 기도원과 주기철 십자바위에 올라가 부흥회와 산 기도를 했었다. 그 곳에서 마음껏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 은혜와 감동을 받았었다. 지금도 그 은혜와 감동이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뜨거운 기도와 눈물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신 것 같다. 나의 작은 소망이라면 많은 청년이 산 기도의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Q. 가정에서의 장로님의 모습은?

어머니가 나에게 보여주셨던 신앙의 모습을 본받아 가정을 이끌어왔다. 또한 이웃들에게 기독교 가정의 좋은 본보기가 위해 기도하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웃들이 우리 가정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되길 바랐다.

내 인생에 가장 보람차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자녀들이 문제없이 성장해 믿음의 가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아들과 딸이 하나님의 큰 사랑 안에서 계속해서 믿음의 가정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조우성 장로의 가족 @출처=조우성 장로
조우성 장로의 가족 @출처=조우성 장로

사역의 시선

사업의 위기를 극복해 정치계로 입문하다
성경적 가치관에 위배되는 법안들 저지해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줄 때 힘을 얻는다"

Q. 지금까지 해온 사역을 소개한다면?

청년시절 교회 활동을 하면서 감리교 청년연합회 마산지역 회장을 맡았으며 이후 고신 측 마산제일교회에서 남전도회연합회 회장을 맡았고 개척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도왔다. 뿐만 아니라 성가대 지휘로 봉사했고 창원시 윈도우 오케스트라와 로람 플루트 앙상블 단체의 단장을 맡으며 예술단체에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마산 YMCA이사장과 마산기독교연합회 부회장, 경남기독교연합회 부회장,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으로 섬겼고 지금은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서 경남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정치를 그만두기 전 경상남도의회 의원과 부의장으로 섬기며 기독신우회 의원 회장도 역임했다. 당시 학생인권 조례안이 발의됐고, 독소조항을 미리 발견해 기독신우회 의원들에게 성경적으로 맞지 않은 부분을 말씀을 드려 막을 수 있었다. 그때 많은 의원이 도와줬다. 그래서 경남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를 1차와 2차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교계에서 알지 못했던 악법들이다. 지금은 교육청에서 3차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해 교계가 인식하고 반대하고 있어 감사하다.

정치를 내려놓고 지금은 인구보건복지협회 경남지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출산이 장려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경상남도의정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경남종합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으로 맡아 헌신하고 있다.

조우성 장로는 인구보건복지협회 경남지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출처=조우성 장로
조우성 장로는 인구보건복지협회 경남지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출처=조우성 장로
조우성 장로는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서 경남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출처=조우성 장로
조우성 장로는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서 경남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출처=조우성 장로
마산제일교회 @출처=마산제일교회
마산제일교회 @출처=마산제일교회

Q.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어떤 순간인가요?

학창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다가 30대 중반에 조선 기자재를 만드는 기업을 창업하게 됐다. 1991년 기업이 확장되던 중 IMF를 겪으며 거래처가 부도가 났다. 그로 인해 우리 회사도 부도의 위기를 맞게 됐다. 나의 잘못으로 회사가 위기를 겪는 것이 아니라 거래처의 부도로 위기를 겪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때 당시 나는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이 어렵지만, 제품들을 우리 손으로 다시 만들면 이겨낼 수 있다고 외쳤고 그때 직원들의 박수 소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60여 명의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일을 도와줬고 직원들의 급여 또한 밀리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회사도 재기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재기의 길을 걷게 하셨다.

또한 초선을 마치고 재선에 다시 도전할 때 성대에 이상 반응이 생겼다. 병원에 방문하니 목에 염증이 생겨 선거 유세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판명이 나왔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길을 열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5월 중순 유세를 시작할 때 목소리가 회복됐다. 하나님은 내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개입하셔서 도와주셨다.

조우성 장로가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출처=조우성 장로
조우성 장로가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출처=조우성 장로

Q. 사역 가운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IMF가 지난 후 기업이 안정됐고 주변에서 사회봉사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래서 난 마산 YMCA 기독교 청년단체에서 이사장을 맡게 됐다. 하지만 마산 YMCA 이사장을 맡으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에서 C(christian)가 빠진 그저 순수한 사회 시민 단체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YMCA를 크리스천 시민 운동단체로 복원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후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정치계에서 연락이 왔고 2010년에 정치 쪽으로 입문하게 됐다. 이후 교회의 악법들을 막게 된 것 같다. 평소에 나는 정치 쪽으로 준비해오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기 위해 만드신 길인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하다.

도의원 시절 조우성 장로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조우성 장로
도의원 시절 조우성 장로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조우성 장로

Q. 일에서 지쳤을 때 에너지 충전요법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소명이라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지치지 않았다. 그리고 타 교회와 학교에에서 초청을 받아 강의하며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줄 때 더 많은 힘을 얻고 있다. 교회에서 많은 인재가 발굴되어 세상에 나갔으면 좋겠다.

생각의 시선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이라는 신앙 서적을 통해 도전을 얻다
성경적 기준에 따라 판단해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길

Q.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지금하고 있는 일들 잘 감당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또한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하나님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하고 있다.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1996년도에 창원 극동방송이 개국하면서 극동방송과 인연을 맺게 됐다. 창원 극동방송 운영위원장과 창원 극동방송 포럼의 회장을 맡게 되며 미국에 방문하게 됐다. 그때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님의 리더쉽과 신앙을 많이 배우게 됐다. 정치에 과감하게 뛰어들게 된 것도 김장환 목사님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신앙 서적 중 이재철 목사님의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이라는 신앙 간증 책을 읽게 됐다. 이재철 목사님의 방황한 시절과 목회를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읽으며 많은 도전을 얻었고 영향을 얻었다.

"신앙인이 가장 빛날 때는 위기를 겪을 때"

Q. 어떠한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가장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떤 일이든 신앙과 이념적으로 부딪칠 때 성경의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한다. 교계가 성경적으로 옳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계속해서 운동을 펼쳐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좋은 사회가 올 것이다.

Q. 나에 대해 책을 쓴다면 어떤 제목으로 삼고 싶다면?

‘만나면 기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자서전으로 펼 계획이다. 내가 정치계에 입문하면서 만든 슬로건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나를 만나면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정하게 됐다.

세상의 시선

정직한 사회가 되길...
사회 속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 기억해야
사회에서 은혜와 소명 드러내길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모든 사회가 정직해지면 좋겠다. 교회가 성경적인 정직 운동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 나는 교회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부터 먼저 정직해지고 점점 퍼져 세상이 바뀌길 기대한다.

Q.독자들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를 해주신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환경 속에서 소금과 빛 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 사회에선 어두운 소식만 들려와 안타깝다. 교회가 지상에서 완벽할 순 없지만, 교회를 통해 소금과 빛이 되라는 말씀을 잘 이행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된 동력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부탁드린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받은 은혜와 소명을 본인이 속한 사회에서 밝은 모습을 드러내길 바란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